老子

덕경 50 生死

무위당 2011. 4. 7. 08:36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 生之厚

蓋聞 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用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나오면 살고, 들어가면 죽는데, (나와서) 사는 사람이 열에 셋이요, 

(들어가서) 죽는 사람이 역시 열에 셋이며,

살아서 움직이고는 있으나 사지에 빠져 있는 사람이 역시 열에 셋이다.

왜 그런가? 그 생이 너무 두텁기 때문이다.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섭생을 잘한 사람은

육지를 여행해도 외뿔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대에 들어가도 갑병을 면한다.

들소도 그 뿔을 들이댈 틈이 없고, 호랑이도 그 발톱을 댈 곳이 없고,

병기도 그 칼날을 댈 곳이 없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그에게는 죽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蓋  덮을 개     兕  외뿔소 시     被  이불 피, (옷)입을 피     措  둘 조, 잡을 조     

爪  손톱(발톱) 조, 할킬 조

 

※ 이경숙 해설

‘어떤 생사의 경계가 있어, 그 곳에 들어가면 죽고 나오면 산다고 한다면’이라는 막연한 가정이다. ‘들어가면 살고 나오면 죽는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태어나면 곧 죽음으로 간다’느니, ‘살 곳을 나와 죽을 곳으로 간다’느니 이런 뜻이 아니다.

‘어떤 생사의 경계가 있어, 그 곳에 들어가면 죽고 나오면 산다고 한다면’, 그 중에 죽는 길로 가서 죽는 사람이 1/3이요, (요행스럽게도) 사는 길로 가서 사는 사람이 1/3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살지도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또한 1/3이다.

 

以其生 生之厚 ‘그 생을 너무 두텁게 살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인데, ‘생이 두텁다(生之厚)’는 것은 ‘생에 너무 집착한다’ 또는 ‘생사에 너무 무지하다’, ‘어리석다’등의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음 문장과 연계시켜 유추해보면 ‘후(厚)’는 ‘섭생(攝生)’을 잘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된다.

 

열명 중에 아홉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셋은 죽고, (요행으로) 셋은 살고, 셋은 죽을지 살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그러면 열명 중에 한명이 남았다. 이 한명이 즉 다음 구절에 나오는 섭생(攝生)을 잘하여 사지(死地)가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섭생(攝生)’이란 ‘도를 잘 터득하여 무위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다. 즉 ‘도를 잘 닦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오면 살고 들어가면 죽는 사지(死地)의 입구에서 어느 쪽이 생지(生地)이고 생도(生道)인지 알 수 있는 지혜를 체득한 사람이 ‘선섭생자(善攝生者)’이다. “도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고지선위사자(古之善爲士者)’라 했다.

 

‘군대에 들어가도 갑병을 면한다. 들소도 그 뿔을 들이댈 틈이 없고, 호랑이도 그 발톱을 댈 곳이 없고, 병기도 그 칼날을 댈 곳이 없다고 한다.’ 등의 말은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황당한 초능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섭생의 효과를 설명하는 과장법이다.

 

노자가 여기서 말하는 섭생이란 도인술이나 신선술 또는 도가의 방술들과 같은 수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와 덕을 체득한 삶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노자는 그런 신비스러운 수행을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도덕경”은 그런 성격의 비결서도 아니고, 수련의 지침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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