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덕경 51 尊貴

무위당 2011. 4. 8. 08:41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도가 낳고, 덕이 쌓아 만물의 형태가 드러나고 세를 이룬다.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이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가 비록 만물을 낳고, 덕이 그것을 쌓으며,

도가 이끌고 덕이 가르치고, 도가 누리게 하고 덕이 끝나게 하며,

도가 바로 세워 보존하고 덕이 이를 뒤덮는다 할지라도,

도와 덕은 있어도 없는 듯하며, 꾸밈에 의존하지 않으며, 우두머리로 다스리지 않으므로,

이를 일컬어 현덕이라 한다.

 

※ 이경숙 해설

어순을 바꾸어 ‘道生之하니 物形之요 德畜之하니 勢成之니라’로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도가 만물을 낳으매 모든 물건이 그 형태를 갖게 되고, 덕이 그 희미한 만물의 기운을 쌓고 쌓아서 마침내 성해지기에 이른다’는 뜻이다. 우주 만물이 창조되는 장엄한 그림을 ‘단 12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물(物)의 씨앗은 도에서 나오지만, 그 씨앗을 발아시켜 명확하에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덕인 것이다.

애초에 무(無)에서 도가 작용하여 물(物)의 형상이 생겼을 때, 그것은 몹시도 미약하고 위태롭고 불분명한 것이었다. 오늘날 양자역학이 밝힌 미립자나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의 바이러스와 같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무와 유 사이에서 방황하는 허깨비와 같은 것일 것이다. 미립자들이 겹겹이 쌓여 원자와 전자를 이루면서 물질이 비로소 형태를 나타내듯 희미하고 위태로운 만물의 시초를 보다 분명하고 명확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덕인 것이다. 이 장은 노자사상의 물리학이며, 양자역학이다.

 

여기서 ‘축(畜)’은 ‘기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쌓다, 모으다’라는 의미이다. 노자는 다음 구절에서 ‘기른다’는 의미로 ‘육(育)’이란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노자는 한 장 내에서 같은 의미로 두 가지 글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으며, 같은 의미의 말을 이유없이 반복하지 않는다.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의 구절은, 앞서서 ‘道生之 德畜之’라는 주어를 보여주었으므로, 주어가 생략된 구절이다. 즉 ‘道長之 德育之 道亭之 德毒之 道養之 德覆之’라고 읽어야 한다.

‘향(享)’은 ‘누리다, 즐거움이 지속되게 한다’라는 뜻이며, 반면에 ‘독(毒)’은 ‘끝내다, 죽인다’의 뜻이다. ‘도가 누리게 하고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면, 덕은 그것을 끝내거나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도와 덕이 비록 천하 만물을 낳고 기르고 양육하고 보존하고 죽이고 살리고 기타 등등 하더라도,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같은 창조주이긴 하지만, 도와 덕은 여호와하고는 달라 있어도 없는 듯하고, 꾸미지 않으며, 우두머리로서 다스리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와 덕의 작용을 일컬어 ‘현덕’이라 하고, 그래서 만물이 도와 덕을 높이고 귀히 여긴다는 말이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는 ‘제2장, 제10장’에서 다루었으므로 참조하기 바람)

 

도와 덕은 기독교의 창조주인 여호와와 같은 인격신과는 다르다. 여호와는 창조주로서 피조물에 대하여 복종과 경배를 요구하고, 피조물에 대하여 분노하고 슬퍼하고 징벌하고 용서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와 덕은 비록 조물주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자유의지와 의도적인 작위가 없다. 천하 만물을 ‘생(生), 축(畜), 장(長), 육(育), 향(亭), 독(毒), 양(養), 복(覆)’하는 모든 것은 하고자 함이 없이(無爲) 스스로 그러하기(自然) 때문이지 도와 덕이 천하 만물을 어찌하겠다는 생각이나 의지를 갖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함으로 만물이 도를 받들고 덕을 귀히 여긴다고 노자는 말한다.

도와 덕은 우주의 출현과 성립에 있어서 상호 보완적인 동시에 대립적이기도 하다. 도가 ‘정(正)’이라면 덕은 ‘반(反)’이다. 도가 ‘생(生)’이라면 덕은 ‘멸(滅)’이 될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입자’와 ‘반입자’의 개념처럼 도와 덕은 서로 반대되는 것과 동시에 서로가 보완적이다. 도가 빅뱅이라면 덕은 블랙홀이요, 도가 우주의 대팽창이라면 덕은 우주의 대수축이기도 한 개념이다. 이것이 노자의 우주관이요, 노자의 우주물리학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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