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士聞道勤而行之 中士聞道若存若亡 下士聞道大笑之
不笑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德若渝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善貸且成
소수의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이를 행하지만,약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웃지 않으면 도가 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말로 전해 지기를,
"밝은 도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고, 도가 나아갈 때는 오히려 물러가는 것 같고,
순탄한 도는 얽힌 실타래처럼 보이고, 높은 덕은 텅 빈 골짜기 같고,
가장 결백한 것은 수치스럽게 보이고, 넓은 덕은 오히려 부족해 보이고,
확립된 덕은 구차한 모습이며, 진실된 덕은 풀어져 보인다"고 했으며,
"큰 형상은 귀퉁이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 음은 소리가 희미하고,큰 물건은 아무 형태가 없는 것이다"고 하는 것이다.
도는 모습을 감추고 있고, 이름도 숨기고 있으므로,
대저 도라고 하는 것은 다만 빌려주는 것으로 훌륭히 이룬다.
夷 오랑캐 이, 평평할 이 颣 실마디 뢰 偸 훔칠 투, 경박할 투 渝 달라질 투, 풀어질 투 隅 모퉁이 우
※ 이경숙 해설
사람들이 도를 듣고 웃는 이유는 도의 진면목은 잘 드러나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 반대되는 모습으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도는 밝고, 나아가고, 순탄하고, 차 있으며, 광대하고, 확실한 것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어둡고, 물러가는 것처럼 보이고, 엉킨 실타레처럼 복잡하며, 텅 빈 골짜기 같고, 수치스러운 오점이 있는 것 같고, 부족하고 구차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자는 ‘그러나’ 하고 이어서 말한다. ‘진실로 넓은 것은 귀퉁이가 없다.’ 도에 모서리가 안보이는 것은 작아서 귀퉁이의 구분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넓어서 그 모서리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말하기를 ‘도라는 그릇은 큰 그릇과 같아서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노자가 말하는 대기(大器)는 일반적인 그릇이 아니라, 하나를 제작하는 데 수백명의 기술자들과 일꾼들이 들러붙어서 짧아도 수개월, 길면 몇 년이 걸려야 만들어지는 당시의 청동기들이다. 요즘은 우리가 ‘기(器)’라는 글자를 그릇이라고 번역하고 또한 그릇하면 밥그릇 국그릇을 연상하지만, 노자 당대는 ‘기’라고 하면 ‘제기(祭器)’였고, ‘대기(大器)’라고 하면 천자(天子)가 천하의 제후들에게 하사하였던 거대하고 정교한 청동기를 뜻했다. 이런 대기들의 제작에는 수천 근의 청동이 들어갔고, 제작 기간도 엄청나게 걸렸다. 그래서 ‘대기(大器)는 만성(晩成)’이라는 소리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쉽게 이해되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는 약간 낯설고 어색하게 들리는 소리다. 어쨌던 도를 듣고 사람들이 웃는다고 하더라도 개의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의 평가에 대한 노자의 대답이다. ‘니들이 도를 알어?’
노자는 ‘선(善)’을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훌륭히 해내다’, ‘잘하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이 문장에서 ‘선(善)’은 ‘대차성(貸且成)’을 모두 수식하고 있다. 즉 ‘빌려줘서 이루는 일을 훌륭하게 한다’는 의미의 문장이다. 도는 스스로 일을 꾸미고 획책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아니며, 세상 만물이 각자의 일을 할 때에 ‘보태주고 빌려주는 무엇’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천하 만물에게는 태어나는 힘이 되고, 후왕에게는 올곧게 서 있는 힘이 되고, 하늘에게는 맑을 수 있는 힘이 되고, 신에게는 신령한 힘이 된다. 하지만 도가 하늘인 것도, 땅인 것도, 후왕인 것도, 신인 것도 아니다. 도는 그들에게 빌려서 쓰인 어떤 작용이었을 뿐이다. 그것은 반(反)이고, ‘약(弱)’이며, ‘은(隱)’이고, ‘무명(無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