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一也
天無以淸將恐裂 地無以寧將恐發 神無以靈將恐歇 谷無以盈將恐竭
萬物無以生將恐滅 侯王無以貴高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是以侯王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故致數譽無譽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옛날에 하나씩 얻었으니,
하늘은 맑음을 얻었고 땅은 편안함을 얻었으며 신은 영을 얻었고 곡은 참(가득 참)을 얻었고
만물은 태어남을 얻었으며 후왕은 천하를 바로함을 얻었으니,비로소 그 하나씩에 이르렀다.
하늘이 맑음이 없으면 장차 파열할까 두렵고, 땅이 편안함이 없으면 장차 동요할까 두렵고,
신이 영이 없으면 장차 영험을 잃을까 두렵고, 골짜기가 채움이 없으면 장차 마를 것이 두려우며,
만물이 생함이 없으면 장차 멸망할까 두렵고, 후왕이 귀함이 없으면 장차 넘어질까 두렵다.
그러므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그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기반으로 한다.
때문에 후왕은 자신을 ‘고’나 ‘과’ 또는 ‘불곡’이라고 낮추어 부르니,
이는 천한 것을 자신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자주 높이는 것은 높이지 않는 것이니,
다듬어 꿰어놓은 아름다운 목걸이가 되지 말고 다듬지 않은 구슬 그대로 있을 일이다.
昔 옛 석 寧 편안할 녕 貞 곧을 정 歇 쉴 헐 竭 다할 갈 蹶 쓰러질 궐
穀 곡식 곡 邪 간사할 사, 마을이름 야 (의문/부정 조사) 琭 돌모양 록
珞 구슬목걸이 낙
※ 이경숙 해설
이 구절의 ‘일(一)’은 도(道)가 아니라 그냥 ‘하나’다. 하늘과 땅과 신과 만물과 골짜기와 후왕이 구하여 얻은 한 가지가 각기 무었이었는지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보잘것 없는 하나씩만을 원하고 희구하여 얻고자 하였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노라는 말이다. 하늘이 맑음과 신령함과 편안함과 신성함과 높음과 올바름을 모두 구하였다면 하늘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늘은 오직 맑음 하나를 구하여 그것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天無以淸 將恐裂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貴高 將恐蹶’의 이 구절은 하늘과 땅과 신과 골짜기와 만물과 후왕이 각기 하나씩만을 구하여 얻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구절의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 필요는 없다. 노자가 다소 억지가 섞여 있는 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는 마지막 구절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매 장의 한두 구절은 노자가 결론을 말하기 위한 도입부이고, 화술상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이 도입부가 결론과 전혀 무관해도 좋다거나 따로 놀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신(神)’은 영적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 ‘신(神)’이 살아 있는 인간과 교감을 갖거나 무언가 작용을 할 때 그것을 ‘영(靈)’이라고 한다. 하지만 만약 ‘신(神)’이 ‘영(靈)’을 갖지 못하면, 그 신은 인간과의 교감을 갖지 못하는 죽은 신이 되고 마는데, 노자는 이를 ‘다할 헐(歇)’로 표현한 것이다. ‘영험이 없어진(다한) 신’ 또는 ‘대답 없는 신’이 된다는 의미다.
첫 구절에서 ‘하늘이 얻은 한 가지가 맑음’이라 한 이유는 하늘이 그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이 맑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땅이 그 토대로 삼은 한 가지가 편안함 뿐이고, 신의 기반이 되는 것은 겨우 영일 따름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세상의 모든 귀하고 높은 가치로운 것은 천하고 낮고 무가치한 것에서 비롯되며,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이 고작 맑음 한 가지를 구하여 얻음으로써 하늘일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이 구하여 얻어야 할 한 가지도 그렇게 대단하거나 화려하고 귀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노자가 말하는 덕(德)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곧 덕이란 구슬을 다듬고 가공하여 보기 좋게 꿰어 놓은 목걸이 같은 것이 아니라 만들기 이전의 다듬지 않은 옥석 자체와 같은 것이며, 그러한 덕을 갖추어 제후나 왕이 ‘고(孤)’‘과(寡)’라고 자신을 낮추어 말하듯 늘 겸손하게 아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게 바로 덕(德)이고, 이것이 노자가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다.
‘낙락여석(珞珞如石)’은 노자 특유의 수사법으로 구슬 목걸이를 의미하는 ‘낙’자를 두 번 나열하여 오히려 흩어진 상태(목걸이로 꿰어지지 않은)의 옥석 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