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도경 10 玄德

무위당 2011. 1. 14. 08:35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國治民 能無知乎

天門開闔 能無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온 나라 사람의 마음(민심)을 하나로 하여 그것이 흩어지지 (분산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백성의) 기운을 오로지 부드럽게 하여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백성의) 섬돌(마당)을 손수 닦아주고 그 어두운 곳을 살펴, 아픈 곳을 없이 해줄 수 있겠는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지(知)에 의존하지 않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의 문을 열고 닫는-백성을 다스리는) 성인의 도를 행하는 데 있어 배필이 없이 할 수 있겠는가?

분명하고도 밝게 뜻을 온 천하에 전하면서도 꾸밈이 없이 할 수 있겠는가?

(만물을) 낳고 기른다 해도, 있어도 없는 듯이 하며, 꾸밈에 의존하지 않고,

우두머리이면서도 나서서 다스리지 않으면, 이를 일컬어 현덕이라 하는도다.

 

載  실을 재     營  경영할 영     專  오로지 전     闔  문짝 합 

 

※ 이경숙 해설

이 장의 내용은 앞 장에서 개인적인 처세의 방편을 설명한 것에 뒤따르는 치국의 요령을 설명하는 장이다. 앞장이 수신제가의 장이라면 여기는 치국평천하의 장이며 노자정치사상의 핵심이다.

 

‘영(營)’은 노자 당시의 춘추전국시대에 군대가 주둔하는 군진의 단위였다. 한 단위의 군대가 모여 세운 진지 또는 숙영지다. 오늘날도 그 뜻 그대로 병영이란 말을 쓰고 있다. 노자는 이 글자를 한 무리의 사람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골랐다. 그것도 그냥 사람의 무리가 아니라 어떤 카테고리 내에 엮여 있는 사람들이다. 씨족이건 동족이건 한나라 백성이건 동질성을 가진 어떤 사람들의 집합이다. 군대를 지 맘대로 이탈하는 것을 탈영이라 하고 전시에는 즉결처분 감이다. 즉 ‘영(營)’이란 그 속의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이 엄격하게 묶여 있는 집단이다. 민족 이니, 국민 이니 하는 말들이 없던 시대다. 기껏해야 백성 이란 말로 인간 사회 집단을 불렀을 뿐이다. 때문에 여기서 노자가 ‘영(營)’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 소속된 사람들을 일컬어 한 말이다. 한 국가의 국민이란 징집되어 병영에 모인 병사처럼 국가라는 하나의 테두리 내에 갇힌 사람들이고 그것으로부터의 입출이 자유롭지 못한 강제적인 소속 개념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의 ‘영(營)’은 군대가 모인 진영처럼 운명 공동체로서 조직된 인간의 집단이나 조직을 말한다. 바로 국가이고 국민이다. 그렇다면 다음 글자까지 붙여서 읽어보자. ‘영백’은 국민의 넋 또는 국민의 마음 이다. 이것을 우리는 민심 이라고 한다. ‘영백’은 민심이다. 이제 맨 앞의 글자, 재를 붙여 보자. 실을 재 가득 찰 재를 붙이면 재영백 이 된다. 즉, 영내에 가득 찬 백이 된다. 조금 다듬으면, 온 나라에 가득 찬 혼 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전국민의 혼이요, 마음 이다. ‘거국적인 또는 총체적인 민심’이란 말이 된다. 앞 세 글자의 뜻만 알면 다음의 포일은 어려울 것도 없다. 하나로 안는다 또는 하나로 품는다 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앞 구절의 의미는 다 풀었다. 재영백포일의 뜻은 온 나라 백성의 마음을 하나에 담는다 이다. 뒷구절 ‘능무리호!’는 ‘능히 떠나지 않게(흩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이다. 그렇다면 ‘재영백포일능무리호!’ 라는 것은 ‘온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에 담아서 이것이 흩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치국의 제일 첩경이요, 요체요, 나라 다스림의 알파요 오메가다.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꾼다면 민심합일, 국론통일이다. 이걸 할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정치가다.

이 장에서 문장이 의문문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노자가 통치자와의 대화형식을 빌려 치국의 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는 기운을 마음대로 한다 이다. 전은 그냥 오로지라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러면 전기치유 라는 말은 오로지 백성의 기운을 부드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백성의 심성을 사납고 흉포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척 은 닦을 척,  씻을 척 이다. 세척제 라 할 때 쓰는 글자다. 제 는 섬돌 제, 층계 제 다. 섬돌이란 옛날 집에서 대청 마루 올라갈 때 딛고 오르도록 마루턱에 놓아두는 넓적한 돌이다. 다르게는 마당이나 뜰 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척제 는 섬돌을 닦아준다 는 말이고 다르게는 마당을 쓸어준다 는 뜻으로 옮겨도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씻어준다 닦아준다 는 의미로는 마당 보다 섬돌이 표현상 더 어울릴 것 같다. 미천한 백성이 집에 오를 때 흙투성이 발을 딛는 그 섬돌을 왕이 허리를 굽혀 손수 닦아준다는 말이다.

현람은 ‘어두운 곳을 본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척제현람은 바로 백성의 섬돌을 닦아주고 그 어두운 곳을 살펴준다 는 뜻이다.

‘능무자호’에서 ‘자’는 흠집, 상처라는 글자다. 그러니까 이 말은 ‘상처를 없앨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전체를 연이어 읽보면 ‘왕이시여, 몸소 허리를 굽혀 백성의 섬돌을 닦아주고 그 어두운 곳을 살펴 백성들의 아픈 곳을 없앨 수 있겠나이까?’ 하고 묻는 말이다.

 

'애국치민 능무지호'는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지에 의지하지 않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하는 뜻이다. 앞에서 노자가 불상현하라고 했던 말을 생각하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아는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마라’는 주문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다스리라는 말이냐 하면, 오직 진실된 마음으로 다스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國治民 能無知乎’를 모두 실천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라면 실로 하늘의 문을 열고 닫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왕이 치국지도를 물었다.

노자가 답하여 묻기를, ‘주공께옵서는 온 나라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이것이 떠나지 않게 할 수 있사옵니까?’

왕이 다시 묻기를, ‘그런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느뇨?’ 하니

노자가 다시 물어 가로되, ‘오로지 백성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만들 수 있겠사옵니까?’

왕이 다시 묻기를, ‘그리한 다음에는 무엇이뇨?’ 하니,

노자가 가로되 ‘백성들 집의 섬돌을 주공께서 허리를 굽혀 손수 닦으시고 어두운 곳을 살펴, 아픈 곳이 없도록 할 수 있겠나이까?’ 하니

왕이 다시 답하여, ‘그렇게 하면 성인의 치도라 하겠느뇨?’

그러자 노자가 말하기를, ‘그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문을 열고 닫는 성인의 도를 행하는 것이옵니다.' 하였는데,

여기까지 대답한 ‘성자에 가까운 왕’이 있어서 노자가 묻는 말에 다 그리할 수 있겠노라. 또 그리 하겠노라 고 대답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실천한다 하여도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문제는 바로 여자다.

남자의 배필인 마누라 문제다. 제 아무리 성인도 마누라 잘못 만나면 선정이고 치국이고 평천하고 간에 도저히 이룰 수 없다. 정관의치라 했던 당나라의 전성기가 양귀비에 무너지고, 그 찬란했던 백제가 의자왕의 탕음에 쓰러지고, 그 총명했던 공민왕이 노국공주에 혼을 뺏겨 5백 년 고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은나라가 달기 때문에 망했고, 주나라가 포사의 웃음에 망조가 들었어. 천하의 덕있는자(성인)를 모셔서 선위하던 풍습이 지 자식새끼한테 대물림하게 되면서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세습이란 게 남자들이 만든 게 아니고 그 어미가 아들한테 물려주려고 지랄발광을 하니까 애비가 그걸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마누라 이기는 남자는 없다는 것이다. 여자한테는 이길지 몰라도 마누라는 못이겨, 혹 마누라는 이길지 몰라도 새끼들 엄마는 절대로 못 이겨.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노자가 능무자호 하고 처량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성인의 도를 행하는데 ‘과연 배필 없이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다. 일단 왕한테 마누라가 있고 그 마누라가 끼여들면 성인이고 나발이고 만사 틀어지게 된다는 것을 노자는 알고 있기에, ‘배필 없이 할 수 있겠어요?’ 하고 걱정스레 묻는 것이다.

 

‘명백사달 능무위호’. 풀어보면 ‘뜻을 명백하게 사방에 전하는 데 꾸밈이 없겠는가?’ 라는 말이 된다. 지도자가 자신의 의사나 생각을 온 천하에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리되 그것에 꾸밈이나 거짓들이 들어가지 않게 하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다시 말하면 백성을 상대로 거짓 선전이나 기만하는 허위 나발을 불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알려야 할 것은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생지축지(生之畜之) 생이불유(生而不有)’는 제2장에 나왔던 말의 반복이다.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 생이불유(生而不有)’에서 ‘만물작(萬物作)’이 ‘생지축지(生之畜之)’로 바뀐 것뿐이다. ‘만물을 만든다 해도’가 ‘만물을 낳고 기른다 해도’로 바뀌었다.

 

생이불유 위시불시는 ‘없는 듯이 살고, 꾸밈에 의지하지 말라’ 는 뜻이다.

장이부재는 제17장에 나오는 ‘태상 하지유지(太上 下知有之)’라는 말과 같다. ‘가장 최상의 우두머리는 아래 사람들이 다만 그가 있다는 사실만 알뿐’, 즉 ‘그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천하가 다르려지고 편안해지는 사람’을 노자는 성인이라 하고 ‘그런 사람이 다스리는 것’을 성인정치라 하며, 그것을 일러 ‘하늘의 문을 열고 닫는 일(天門開闔)’이라 한 것이다. 이것의 다른 표현이 곧 ‘현덕’이다.

 

지도자가 명백하게 자기의 의사를 꾸밈없이 사방에 알리면서도 다스리지 않는 지도자가 되는 현명함은 짐승들이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 모든 짐승은 자기들 집단의 우두머리를 둔다. 사자의 경우 예를 들면, 수사자는 암사자들과 새끼들로 이루어진 가족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다. 그런데 이 수사자가 자기 영토와 식솔들을 다스리는 모양을 보면, 아무 것도 하는 짓이 없이 그냥 빈둥거려. 나무 밑에서 낮잠이나 자고 한번씩 암사자들이 와서 꼬랑지를 흔들면 그거 한번씩 해주고 그게 다다. 사냥도 안 하고 일도 안 해. 어쩌다가 마지못해 영토 내를 한번씩 둘러보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나 수사자가 한번 크게 울면 사바나 전체의 동물들이 숨을 죽인다. 그래서 백수의 왕이라 하고, 이것이 바로 명백사달이다. 태상은 하지유지라고 ‘가장 좋은 우두머리는 아랫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는 자다’ 수사자가 그렇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암사자들을 괴롭히지도 않지만 수사자가 하릴없이 나무 밑에서 뒹굴면서 낮잠이나 자고 게을러터져서 사냥도 안 하지만 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바나 전체가 사자의 집단에 복종을 하는 것이고 어떤 다른 짐승들도 사자를 우습게 보지 못한다. 그리고 암사자들은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새끼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이 성인치도의 모델이다. 코끼리도 마찬가지여서, 늙은 수코끼리 한 마리가 수백 수천 마리의 대가족을 거느리고 살지만 암만 카메라를 숨겨놓고 여러 달을 관찰해도 그 우두머리 코끼리가 특별히 통치행위를 하는 게 없이 그저 우두머리라고 있을 뿐이고 모든 코끼리 집단이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새끼 코끼리 한 마리조차도 우두머리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는 법이 없는것, 이것이 바로 장이부재, 명백사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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