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도경 04 或存

무위당 2011. 1. 3. 09:23

道沖而用之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도는 깊은 것이어서 쓰려고 하면 잡히지 않아 소용이 없다.

도는 깊어서 온갖 만물이 그에서 비롯되나 보다. (실로 깊어서 만물의 근원인 듯 싶다.)

도의 가지를 쳐내고 본래 모양을 보려 하면 빛이 어우려져 춤추는 것과 같고, 

어지럽게 얽힌 것을 풀어 헤쳐 그 속을 보려 하면 다만 낱낱의 티끌이 있을 뿐이며,

깊이 잠겨 있어 어찌 보면 있는 듯도 하건마는

그 비롯됨을 알 수 없으니, 상제보다도 먼저 있었다는 것만 알겠구나.

 

沖(冲)  빌 충     淵  못 연     似  같을 사     挫  꺽을 좌     銳  날카로울 예     

紛  어지러울 분     湛  즐길 담     象帝 : 현상계를 이루는 신

 

※ 이경숙 해설

'도는 깊다. 텅 비어서 쓸려고 하면 써먹을 데가 없는 도이지만 그러나 그 텅 빈 것이 깊기는 아주 깊어서 만물지종이다 하는 뜻이다. 만물지종이란 쉽게 말하면 만물의 씨앗이고 만물의 부모다. 즉, '도는 텅 빈 것이어서 쓰고자 해도 소용이 없는 물건이지만 그 속이 깊고도 깊어서 세상 만물이 다 그것에서 나온다' 이다. 이 대목에서 훗날의 음양가 들의 '무극' 과 '태극'이 나왔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오고 태극에서 음양이 갈라져 음양에서 오행이 비롯되고…. 무극이라는 것은 음양오행과 세상 만물의 시작이지만 무극 자체는 볼수도 만질 수도 파악할 수도 써먹을 수도 없는 텅 빈 무엇이다. 무극은 퍼내서 쓰고 어쩌고 할 물건이 아니다. 바로 노자가 앞에서 말했던 '천지지시' 다. 이 천지지시가 이름을 붙이는 순간 바로 만물지모가 된다. 이것이 바로 태극이다. 태극은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고 음양이 조화를 일으키고 있는 상태다.

노자는 '도는 쓸모 없는 물건이다. 소용이 안 된다' 고 분명히 말한다. 만물을 낳기는 해도 만물한테 소용되는 구석은 없다는 것이다.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도라는 물건의 형상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물건에서 날카롭게 삐쳐나온 것들, 즉 튀어 나온 가지들을 꺽어버린다는 말이다. 삐죽삐죽 나온 것을 모조리 꺾으면 둥글든 육방체든 그속의 틀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도라는 물건의 뾰족하게 나온 부분을 모두 쳐낸 후 그 바탕 틀의 생긴 모습을 묘사해 놓은 말이 바로 화기광이다. 여러개의 빛이 어우러진 상태라 영롱하지만 형체가 없고 파악할 수가 없는 모습이다.

어지럽고 복잡하게 얽힌 것을 풀어서 헤치면 도는 바로 '동기진' 즉, 티끌과 같아진다는 것이다.

‘도라는 물건의 튀어나온 부분들을 잘라내서 그 바탕의 모습을 보면 빛이 어우러지는 모습이요, 도의 복잡하고 난잡한 것을 풀어헤쳐서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낱낱의 티끌과 같다' 라는 뜻이다.

고로 천하 만물이 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아무리 그것을 잘라보고 가루로 빻아보고 실타래를 풀 듯이 헤쳐봐도 빛이 어울리는 화광이나 먼지보다 작은 티끌 같은 것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괜히 도가 어떤 건지 확인해 보겠다고 파보고, 뒤집어보고, 헤쳐보고, 세워보고, 눕혀보고, 튀겨보고, 찔러보고, 잘라보고, 녹여보고 기타 등등 헛수고 하지 말라는 충고다.

 

(도라는 것이 있어 보이기는 하나 하도 맑아서)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짐작컨대 상제(象帝)보다도 먼저가 아니겠는가.

즉 도를 신이나 제보다 앞서 존재하는 무엇으로 보는 것이다. 무엇을 다듬고 얽힌 것을 풀고 조화를 부리고 사람의 기도를 듣고 소원을 풀어주고 하는 영적인 존재들, 즉 신이란 것은 도의 다음에 나오는 개념이고 도는 그런 존재보다 선행하는 무엇이다.

도가 만물지모라고 할 때 신의 존재들조차도 그 만물에 포함된다. 이러한 '도' 가 만물에 직접적인 효용가치가 있다고 하면 노자의 도론은 출발부터 무지막지한 반론과 공박의 목표가 되었을 것이다. 일단 노자의 결론은 그렇다. '도에 대해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 도는 설명이 가능한 무엇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이해를 할 것인가? 바로 도가 낳은 만물의 법칙에서 그것을 유추해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도' 에 기반한 생활 윤리이며 규범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도출한 정치사상이 바로 노자의 '성인정치'다. 이 성인정치는 공자의 '왕도 정치' 와 확실히 다른 정치론이며 곁들여 뛰어난 처세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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