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도경 03 爲無爲

무위당 2010. 12. 30. 09:08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현명함(현명한 사람, 현자)'을 높이 받들지 않으면 사람(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되고,

재화(생필품)을 귀하게 하거나 얻기 어렵게 하지 않으면 사람(백성)들이 도적질을 하지 않게 되고,

욕심 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이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 길이다.

그러하므로 성인의 다스림이란,

백성들의 마음을 비우게 (편안하게) 하는 대신에 굶주리지 않게 하고 (배를 채우게 하고), 

뜻 (심지) 을 약하게 하는 (민심이 동요하지 않게 하는) 대신에

뼈를 강하게 (몸을 튼튼히 : 생업에 전념하게) 해주어,

언제나 백성들을 아는 것과 욕심이 없게 하여야 하는데, 

지식층 (지배계급) 또한 감히 (백성들을) 속이거나 (진실을) 꾸며대지 않아야 한다.

꾸미지 말고 하면 (꾸밈없이 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尙  오히려 상, 높일 상 

 

※ 이경숙 해설

‘현명함’을 ‘높이 사지 않는다’는 것은 ‘우매함’을 ‘천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계급사회를 반대하고, 능력이 소용되지 않고 능력의 우열이 드러날 필요가 없는 소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만민평등사상을 주창한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생필품)들이 귀하고 얻기 어려우면 사람들은 도적으로 변하게 된다. '목구멍 이 포도청이다' 사흘 굶고 담 안 넘는 사람 없다' 는 속담들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공자나 맹자보다 노자가 위대한 점은 바로 이런 데 있다고 본다. 아무리 인의예지신을 떠받고 예의와 범절을 가르쳐도 근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 배부른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노자는 갈파하고 있다. 인이니 예니 도덕이니 하는 것보다도 우선 배를 채우고 따뜻하게 자는 것이 선결문제라는 것을 노자는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도외시한 도덕적 규범들을 노자는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고로 성인의 다스림이란…' 하고 다음 구절의 말들을 하고 있다.

 

'성인이 백성을 다스리는 요체는 마음과 뜻 즉 심지를 비우고 약하게 만들고, 반면에 그 배와 뼈는 채우고 강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는 말로써 노자정치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구절이다. 다시 말하면 백성이 쓸데없는 야심이나 큰 뜻을 세우는 주제넘는 생각을 못 하게 하면서 그 대신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해주라는 말이다. 복실골강이란 쉽게 말하면 '배부르고 등 따시다' 는 말이다. 노자는 정치사상적으로는 우민정책의 주창자로 보이기도 한다. 단 그의 우민은 애민을 위한 우민인 것이 마키아벨리즘의 우민정책과의 차이점이다. 즉 다스리는 자를 위한 우민이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백성을 위한 우민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배부르고 등 따신 백성이 제일 행복한 백성이라고 보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정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라의 다스림에 있어서 백성의 기본적 생존권 보장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지상의 과제라는 것' 이 노자가 말하는 이 장에서의 핵심이다. '일단 사람들의 배가 불러야 된다' 가 노자정치사상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정치사상의 핵심이라 하기에는 너무 뻔하고 쉬운 소리인 것 같지만, 이것이야말로 인류 역사에 있었던 모든 정치론을 전부 다 합친 것보다 훨씬 가치로운 한마디다. '백성의 배를 채워주고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라!' 노자 아니면 주창하지 못하는 위대한 사상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얼마나 쉬운 소리인가? 그래도 예수 아니면 못 하는 소리다. '백성들 배부터 채워줘' 오직 노자라서 할 수 있는 소리다. 정치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은 없다. 정치란 어떤 의미에서는 이 한마디가 시작이고 끝이고 알파요 오메가고, 이게 전부다.

 

얼핏 보면 마치 백성을 힘센 소나 배부른 돼지로 만들자는 우민정책으로 보이지만 백성들 배 채워주는 정치가 제일 이다. 그러면 심허지약이 무슨 말인가? 백성이란 복허하고 골약하면 자연히 심실하고 지강하게 된다. 복허골약하면서 심실지강하다는 것은 바로 투사들이고 혁명가들이다. 복실골강하면 심허지약해지니까 어떻게 해서든 백성들 배는 부르게 해라.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귀하게 만들거나 얻기 힘들게 해서는 정치고 뭐고 되는 게 없을 거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사부지자 불감위야' 이 한마디야말로 노자의 정치사상이 단순한 우민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앞 구절에서 '언제나 백성들을 잘 모르게 하고 욕심이 없게 만들어라'라고 한 것은 대단히 반인류적이고 비인도적인 반동사상가로 오해받을 만하다. '상사민무지무욕' 이라는 말은 쉽게 풀면 백성을 아무 것도 모르고 욕심도 낼 줄 모르는 촌무지렁이로 만들어야 된다는 소리다. 그저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살아야 한다' 하면서 자기 주제파악을 확실히 하고 땅이나 파면 된다는 그런 말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백성을 그렇게 만든다 쳤을 때 아는 것도 없고 욕심 낼 줄도 모르는 어린 백성은 그야말로 통치자의 노예가 될 게 뻔하다. 무지하고 무욕한 백성이야 사실 지배 세력에게는 이상적인 백성일 테고 심하게 말하면 그들이 소유한 가축 무리와 마찬가지 일테니까. 많이 알고, 욕심 만만한 소수의 무리(지배계층)와 아무 것도 모르고 욕심도 없는 어린 백성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과연 노자는 이상국가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배계급과 일반 백성의 구별이 없이 몽땅 다 무지하고 무욕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만약에 전자라면 노자는 우민화를 부르짖은 반동이요, 후자라면 노자는 사상가가 아니라 몽상가다. 그러나 문맥상 후자를 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라는 글자는 '만든다' '하게 시킨다' 라는 뜻의 글자이므로 '백성을 무지하고 무욕하게 만들어라' 하고 노자가 사주하고 있는 어떤 상대가 있다. 바로 지배계층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배계층이 바로 '많이 아는 무리'다. 다음 구절에 나오는 '지자' 가 바로 그들이다. 즉 식자, 지식층을 말한다. 이 지자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성인이다. 따라서 뒤의 구절은 지식층에 대한 당부이고 그들이 '백성을 무지무욕하게 만들어 통치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백성이 무지무욕하여야 한다면 반면에 너희 지식층은 어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뭐냐? 바로 '지자불감위야' 다.

백성들과는 다르게 많이 아는 지자들은 절대로 무지무욕한 백성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백성을 무지무욕하게 만드는 것이 허용되기 위해서는 무지무욕한 백성을 속이는 지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다. '불감위야' 는 '감히 속이거나 꾸며대지 않는다' 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노자는《도덕경》에서 ‘위’라는 글자를 '속이는 일' '꾸며대는 일' '가장하는 일' '가식하여 하는 일' 이란 의미로 일관되게 쓰고 있다.

여기까지 이해를 하더라도 노자의 정치사상이 비판받을 소지는 남아있다. 즉 현실 정치를 도외시한 이상가의 꿈같은 소리라는 공박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지도층이 과연 국민에게 한 마디의 거짓말도 하지 않고 어떤 것도 숨기거나 꾸며대지 않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 하는 것이다. 노자의 놀라운 점은 바로 그런 비판에 대한 대답까지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노자의 통찰력은 바로 다음 한 줄에 집약되어 있다.

 

'무위' 가 ‘속이거나 꾸며대지 않는 것’이므로, '위무위' 는 '꾸미지 말고 하라'는 뜻이거나 '꾸미지 않은 것처럼 꾸민다'는 뜻이다. 즉 정치를 함에 있어서 완벽한 무위가 불가능할지라도 최소한 무위한 것처럼 꾸미기라도 하라는 말이다. 즉 백성을 어쩔 수 없이 속여야 할 경우에도 백성이 속는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속이라는 정치술의 요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위무위'이다 현실정치에서는 무위의 치(治)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위를 위”하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노자의 위대함이 있다. 무위가 어렵다 해서 유위를 택하지 말고 무위를 위함으로써 현실에 대처하라는 가르침이다. 백성이 무지무욕하고 지자들이 무위로 다스린다면 노자가 그리는 이상향이겠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백성은 무지무욕하고 지자들은 무위한 척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노자의 희망사항이다.

백성이 무지하고 욕심이 없어서 단순 소박하다 해도 그것을 기회로 지도층이 백성을 속이고 꾸며대는 짓을 하면 백성의 단순 소박함이 유지될 수가 없고, 반드시 소요와 혼란이 일어남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도층이 최소한 백성이 그런 사실을 모르도록 숨길 수 있는 염치와 지혜로움만 있어도 나라는 잘 다스려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유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백성에게 알려졌을 때다. 백성이 모르게 하는 정도의 위는 눈감아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위무위하면 즉무불치'라 한 것이다.

 

 

'老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경 06 玄牝   (0) 2011.01.05
도경 05 不仁   (0) 2011.01.04
도경 04 或存   (0) 2011.01.03
도경 02 無爲   (0) 2010.12.29
도경 01 名  (0) 2010.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