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덕경 79 契徹

무위당 2011. 6. 15. 08:30

和大怨必有餘怨

安可以爲善

是以聖人 執左契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큰 원한을 풀었다 하여도 반드시 약간의 원한은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잘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고 안심해도 좋겠는가?

그래서 성인은 채권을 가지고 사람을 핍박하지 않는다.

채권을 관리하는 것은 유덕한 일이나 세금의 징수는 무덕한 일이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한 것이 없어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한다.

 

契  맺을 계     責  꾸짖을 책, 빚 채     徹  통할 철 (주나라 조세법) (撤 거둘 철) 

 

※ 이경숙 해설

원한을 크게 맺으면 설사 화해를 해도 앙금이 남는 법이기 때문에 성인은 결코 채권을 가지고 사람을 핍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갑자기 웬 빚 독촉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고 의아한 기분이 들지만,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채권자의 변제 강요는 크고 깊은 원한을 맺게 되는 세상의 수많은 일들 중 한 가지 예일 뿐이다. 노자 당시에도 빚으로 인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원한이 심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장의 요점은 큰 원한을 짓지 말라는 소리다. 남의 눈에 피눈물이 흐를 짓과 남의 가슴에 못박는 짓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계(契)’의 반쪽을 관리하는 것은 채권자의 권리고, 꾸어준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폭리를 취하는 고리대금이나 사람의 궁지를 이용한 악덕 채권이 아니라면 개인 간에 빌려주고 돌려받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으나 이것을 유덕한 행위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싶은데 노자는 이것을 유덕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바로 뒤따라 나오는 진짜 무덕(無德)한 일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세금의 징수야 말로 무덕한 일이어서 그것과 비교하면 ‘계’의 왼쪽을 내보이며 빚을 갚으라고 채근하는 일 정도는 차라리 유덕(有德)한 일에 들어간다고 하는 비교 강조이다.

‘철(徹)’은 농사 수확물의 10분의 1을 거두는 주나라 세금 중에 하나에 붙여진 이름이다. 앞에서도 백성이 굶주리는 이유는 바로 나라의 가혹한 세금 징수가 원인이라고 하였거니와 여기서는 개인 간의 채무와 비교하여 가장 무덕한 일로 말하고 있다. 채권의 내용이 기록되고 증서된 ‘계’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각각 반쪽씩 갖고 있어서 서로 확인이 가능하고, 또 채무의 발생이 실재했고, 변제의 약속을 채무자가 한 것이다. 그러나 세금의 징수인 ‘철’은 통치자들이 일방적으로 정해서 부과하고, 강제로 거두어 가는 것이지 백성이 그 반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징수 방법도 당시에는 대단히 가혹하고 엄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간의 역사에 세금에 의한 백성의 고통은 없었던 적이 없고, 세리(稅吏)의 포악함은 동서의 구별이 없었다. 아무리 가혹한 세제라도 백성들은 그것에 저항할 방법도 힘도 없으며, 위정자들은 백성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는다. 노자의 다음 말로 미루어볼 때, 노자는 이 세금 징수가 개인 간의 채무 관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무덕(無德)한 이유의 중요한 한 가지로 ‘불공정한 것’을 꼽고 있는듯 하다. 왜 이렇게 볼 수 밖에 없는가 하면, 우선 앞 장에서 ‘하늘은 남는 데서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채우지만, 사람이 하는 짓은 부족한 데서 덜어내어 오히려 남는 것에 보탠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인간의 통치 행위에서 이 ‘부족한 것에서 덜어내서 넘치는 것에 보태고, 없는 사람의 것을 뺏어서 많이 가진 자의 배를 채우는 짓’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이 바로 세금 징수를 통해서 이다.

예로부터 세금은 많이 버는 자가 더 내고, 적게 버는 자가 덜 내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실제로 행해지는 바는 그 반대였다. 가진 자, 권력자, 위정자들은 온갖 세금과 역(부역, 병역 등)에서 면제되었고, 납세, 부역, 군역 등은 언제나 평민들 만의 짐이었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부의 세습과 기득권층의 기반을 공고하게 유지 하는 수단이 바로 세금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법의 기본 정신은 바로 누진세에 있고, 많이 버는 자가 더 많이 내도록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세금의 징수가 법으로 정해져 있고, 공정한 부과를 위해 많은 이론과 장치들이 발달한 요즘에도 납세자에게 힘이 되는 것은 세무서에 있는 친척이고 연줄이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강변을 해도 우리의 오랜 경험과 역사는, 관청의 일이란 법보다 정실이 우선한다고 믿게 만든다. 관리와의 개인적인 관계나 친소(親疎)의 정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했던 것이 백성의 짐이었다. 명확하게 우계(右契)와 좌계(左契)에 기록된 개인과의 채무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이 구절에서 이어서 말하기를 ‘천도(天道)는 무친(無親)하니 상여(常與)하되 선인(善人)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훌륭하고 어진 말씀이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한 것을 두지 않아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한다.’ ‘상여(常與)’는 ‘늘 그렇게 대한다’고 옮기면 되는 말이고, ‘선인(善人)’은 ‘좋은 사람’이다. 좋거나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친하거나 친하지 않은 구별이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세금의 징수와 같은 공(公)에 친소(親疎)와 호오(好惡)의 사(私)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장에서 노자가 하고자 하는 말인데, 이 문제는 동서고금의 모든 시대의 모든 나라에 공통된 문제였고, 이에 대한 교훈이나 가름침은 드물지 않다.

공자의 말씀을 모아놓은 책, “가어(家語)”‘관사(觀思)’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계고(季羔)는 위나라의 옥관(獄官)이었는데, 죄지은 사람의 발을 자르는 형벌을 시행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위나라에 정변(政變)이 일어나 계고는 달아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성문(城門)에 이르자 계고가 발을 잘랐던 죄인이 성문지기가 되어 있었다. 이미 시간을 넘겨 성문을 열 수가 없었다. 계고가 당혹해하자 성문지기가 일러주었다. “저 쪽으로 가면 성의 담장이 허물어진 곳이 있습니다.” 그러자 계고는 “군자가 어찌 담을 넘어 도망칠 수가 있겠는가?”하며 주저 앉았다. 이에 성문지기가 다시 “저 쪽으로 가면 개구멍이 있습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계고는, “군자가 개구멍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고 또 망설였다. 이번에는 성문지기가 조그만 방으로 계고를 데리고 가 숨겨주었다. 계고를 잡으러 왔던 자들이 돌아간 후에 계고는 성문지기에게 물었다. “내가 임금의 법을 어길 수 없어 그대의 발을 자르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궁지에 빠져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그대는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나에게 세 번이나 도망갈 길을 일러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성문지기가 대답하기를, “발을 잘린 것은 내 죄가 거기에 해당되니 어쩌는 수 없지 않습니까. 앞서 당신께서 저를 법으로 다스릴 때에 다른 사람을 먼저 다스리고, 나를 나중에 다스린 것은 혹시 내가 용서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가 아니었습니까. 재판이 끝나고 죄가 결정되어 형을 선고할 때, 당신께서는 몹시 우울한 심정이었음을 나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알았습니다. 당신께서 어떻게 내게 사정(私情)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하늘이 낳으신 군자는 마땅히 그래야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당신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공자는 이렇게 평했다. ‘훌륭한 일이다. 관리가 되어 법을 집행하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어진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면 덕을 심게 되고, 엄격과 강포(强暴)를 더 하게 되면 원한을 심게 된다. 공정한 마음으로 행한 것은 바로 계고라 하겠다.’

노자가 이 장에서 하려고 하는 말은 바로 이 이야기의 끝에 공자가 한 평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앞에서 하수인의 이야기를 했다. 옥리(獄吏)든 세리(稅吏)든 관청의 일을 하는 관리는 모두 ‘상(上)’의 심부름꾼이고(현대는 국민의 심부름꾼이라 하지만), 하수인이며, 집행자들이다. 우리가 관직을 맡지 않을 수는 없지만 ‘상(上)’을 대신해서 손을 다치고, 무덕한 집행으로 악업을 쌓는 일은 삼가야 할것이다. 형벌을 집행하거나 세금을 징수할 때도 언제나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것을 노자와 공자는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공(公)은 천(天)이니 공정(公正)하고 무사(無私)하여야 한다.’ 이것이 ‘유덕(有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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