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以聖人 欲無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 쉽고, 징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꾀하기 쉬우며,
무른 것은 녹이기 쉽고, 그 미세한 것은 흩뜨리기 쉽다.
일은 생기기 전에 처리하고, 어지럽기 전에 다스린다.
한아름 되는 나무도 털끝에서 생기고, 9층의 누대도 한 줌 흙이 쌓여 이루어지고,
천리 여행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꾸며서 도모하는 자는 실패하고, 잡으려고 애쓰는 자는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하고, 무위하므로 실패하지 않고,
잡으려고 하지 않으므로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을 할 적에는 거의 다 되었다가 실패를 한다.
끝을 조심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곧 일에 실패하는 경우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이 없기를 바라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않으며,
배우지 않은 것을 배우고, 많은 사람이 지나쳐 간 곳으로 되돌아가고,
만물이 스스로 그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감히 꾸며대지 않는다.
持 가질 지, 보전할 지 脆 무를 취 泮 학교 반 愼 삼갈 신 輔 도울 보 (補 도울 보)
※ 이경숙 해설
‘기미조이모(其未兆易謀)’는 ‘그 징조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은 도모하기 쉽다’는 말이다.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할 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할 때 일을 꾀하기가 가장 쉽다’는 말이다.
“한비자”‘설난’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정무공(鄭武公)이 호(胡)땅을 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감추려고 자기 딸을 호의 임금에게 주어 그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묻기를 ‘장차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데, 어느 곳을 치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관기사(關其思)란 대부가 대답하기를 ‘호를 치는 것이 좋습니다’고 하자 무공은 ‘호는 형제의 나라고 과인의 딸을 시집보낸 나라인데 그 곳을 치라고 하니 말이나 될 법한 소리냐’고 크게 화를 내면서 관기사의 목을 베어 죽였다. 호나라 임금은 그 소식을 듣고 정나라가 진심으로 호에 대하여 우의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마음을 놓게 되었다. 정무공은 기회를 보아 불시에 호나라를 침공하여 통째로 삼키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징조를 숨겨 일을 쉽게 꾀한 예이다.
“한비자”‘외저저’에는 일을 도모하기 위해 징조를 먼저 알아낸 이야기가 있다. 제(齊)나라의 설공(薛公)이 재상일 때 제위왕(齊威王)의 왕비가 죽었다. 위왕에게는 후궁이 열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누가 왕비의 자리에 올라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왕이 누구를 정실로 삼아야 할 것인지 재상인 설공에게 물어왔을 때에 왕의 심중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왕과 의견이 맞지 않은 것이 되고 뒤에 왕비가 될 사람에게도 미운 털이 박힐 일이었다. 설공은 왕의 심중에 두고 있는 후궁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으나 겉으로 보기에 모두 똑같이 사랑하는 듯하여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설공은 열 개의 구슬 목걸이를 왕에게 선물하고는 열 명의 후궁에게 하나씩 주라고 하였다. 그중에서 하나는 다른 아홉 개보다 조금 더 좋은 구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설공은 그 목걸이를 어느 후궁이 걸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누가 가장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지 알아내어 그 후궁을 왕비로 천거하였다. 물론 그 후궁이 왕비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설공은 왕과 왕비의 신임을 더욱 두텁게 받았다. 이 목걸이가 바로 징조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일을 도모 할 때는 징조를 숨겨야 하는 경우와 어떤 수단 방법을 쓰더라도 징조를 알아내야만 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이 징조란 요즘 말로 정보이다. 정보전에서 이겨야 전쟁에서도 이기는 법이다.
‘무른 것은 녹이기 쉽고, 작은 것은 흩뜨리기 쉽다.’는 말은 ‘일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꾸미고 강조한 말이다.
이 장에서 나오는 말들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는 격언들이다. 특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유명한 속담이 여기 “도덕경”의 이 장에서 나온다(千里之行 始於足下). 노자 철학의 가치는 신비로운 수행이나 양생의 방도가 아니라 이런 일상에 깊이 천착된 지혜로운 말씀들에 있다. 평이하고 소박한 경구들이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물과 공기처럼 늘 함께 있는 말들인 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물과 같고 공기와 같아 그리 귀히 여겨지지도 않지만 그런 격언을 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금언들이 아닐 수 없다.
‘끝을 조심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라’는 말은 ‘시종여일(始終如一)’, ‘초지일관(初志一貫)’ 등과 같은 말이다. 요즘도 늘상 쓰는 격언이나 옛말 중에 “도덕경”이 그 원전인 말이 놀랍도록 많다.
“한비자”‘유로(喩老)’편에 보면 ‘학불학(學不學)’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왕수(王壽)가 책을 짊어지고 여행을 떠나 주(周)나라의 서울로 가던 중 서풍(徐馮)이라는 은사(隱師)를 만났는데 서풍이 양수에게 다음과 같이 일렀다. ‘모든 일은 사람의 행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행동은 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지자(知者)에게는 정해진 일이란 없다. 또 책은 사람의 말을 기록한 것이고, 말은 사람의 지혜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므로, 지자는 책 같은 것을 간직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그대는 무엇하러 책을 짊어지고 다니는가?’ 이 말을 듣자 왕수는 책을 불태우고 펄펄 뛰며 좋아했다. 결국 참다운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말을 의지해서 가르치는 일도 없으며, 책을 상자 속에 넣어두는 일도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지만, 왕수는 그 진리를 깨우친 셈이며, 배우지 못한 것을 배웠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배우지 않은 것을 배우고, 뭇 사람이 지나간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하였다.
‘복중인지소과(復衆人之所過)’는 ‘과(過)’라는 글자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글의 의미가 달라진다. ‘과’를 ‘지나갈 과’로 읽으면 ‘뭇 사람이 모르고 지나가버린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되고, ‘허물 과’로 읽으면 ‘뭇 사람이 다 잘못하는 곳으로 나는 돌아간다’는 뜻으로 읽게 된다. 두 말이 모두 철학적 경구가 될 수 있으므로 독자의 선택에 맡겨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뭇 사람이 모르고 지나쳐 가는 그 장소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의 구절로 읽는다. 양쪽 말의 의미를 각자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