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덕경 58 無正

무위당 2011. 4. 20. 09:23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其日固久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 直而不肆 光而不耀

 

정치가 민민하면 백성이 순순하고, 정치가 찰찰하면 백성이 결결하다.

화라는 것은 복이 의지하는 바이고, 복은 화가 다시 복이 되는 곳이니

그 끝을 누가 알 것인가?

언제나 올바른 것은 없다.

올바름이 바뀌어 기이함이 되기도 하고, 선한 것이 뒤집어지면 요망함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오랫동안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크다 하여 쪼개지 않으며, 모서리가 튀어나온다 하여 잘라 내지 않으며,

곧다고 해서 늘이지 않고, 빛이 있다고 하여도 비추지 않는다.

 

悶  번민할 민     淳  순박할 순     察  살필 찰     缺  이지러질 결     倚  의지할 의     

廉  청렴할 렴, 날카로울 렴     劌  상처입힐 귀     肆  방자할 사, 늘일 사    

耀  빛날 요 (曜 빛날 요) 

 

※ 이경숙 해설

‘민민(悶悶)’, ‘순순(淳淳)’, ‘찰찰(察察)’, ‘결결(缺缺)’이 네 가지 말은 노자 고유의 합성어들이다. 글자를 중복하여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민민(悶悶)’은 ‘뭔가 샤프하지 못하고 우둔하고 무디어 보이는 상태’, ‘순순(淳淳)’은 ‘몹시 순박하고 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찰(察)’은 ‘세밀하게 살펴 본다는 것이니’, ‘찰찰(察察)’은 법령이 빈틈없이 세밀하며 용의주도한 상태, 법이 치밀하면 치밀할수록 오히려 백성들의 허물이 많아지고 부족해진다는 것은 법에 의한 통치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말이다. 법가(法家)의 학자였던 한비(韓非)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엄격하고 치밀한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였으나 그의 제국은 2대를 넘지기 못한 것에서도. 우리는 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치의 허약성과 약점을 볼 수 있다.

 

‘정복위기(正復爲奇) 선복위요(善復爲妖)’에서 대부분의 노자 해설서에는 이 구절의 ‘復’을 ‘부’로 읽고 있는데, 이 경우는 ‘뒤집히다’ 또는 ‘바뀐다’의 뜻이기 때문에 ‘복’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부’로 읽으면 자의(字意)가 ‘다시’라는 의미가 된다.


‘인지미(人之迷) 기일고구(其日固久)’라는 말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잘못 알거나 오해를 한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기실은 복인데도 그것을 화로 알고 지내거나, 사실은 요망한 일인데도 선한 일로 생각하고 사는 일이 자주 있다. 이것이 바로 잡히고 드러나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고, 시간이 흘러야 되는 경우도 역시 많다.


‘방(方)’은 여러 가지의 뜻(사각형, 방위 등)이 있으나, 여기서는 사방으로 뻗어나간 넓은 모양을 그리고 있다. ‘염(廉)’은 ‘청렴하다’ 혹은 ‘염치’라는 뜻도 있지만, ‘모서리’라는 뜻도 있다. ‘귀(劌)’는 ‘상처를 내고 훼손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방이불할(方而不割)’은 ‘큰 것을 여러 개로 나누어 쪼개지 않는다’는 뜻이며, ‘염이불귀(廉而不劌)’는 ‘모서리를 잘라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肆)’는 ‘방자하다’는 뜻도 있지만 ‘잡아늘인다, 벌려놓는다’는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직이불사(直而不肆)’에서 ‘곧다(直)’와 ‘방자하다’는 말은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직이불사(直而不肆)’라는 말은 ‘곧은 물건이라 해서 잡아 늘이지 않는다’는 뜻이 가장 타당하다.

‘광이불요(光而不耀)’는 ‘빛을 아무데나 비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들은 모두 성인들이 천하 만물의 ‘무위(無爲 : 있는 그대로)’와 ‘자연(自然 : 스스로 그러함)’을 존중하고 그것에 인위를 가하지 않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보기에 크다고 해서 그것을 여러 개로 쪼개고 나누어버리면 나중에는 처음과 같이 큰 것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고, 모서리가 튀어나온 물건의 귀퉁이를 잘라내면 나중에 그 잘라낸 귀퉁이가 요긴할 수도 있고, 똑바로 펴진 물건이라 해서 더 늘이게 되면 나중에는 짧은 상태이던 것이 더 편리한 것일 수도 있으며, 빛이 있다고 해서 아무데나 비추면 어두운 것이 필요한 곳까지 밝아져버린다. 따라서 성인은 천하 만물을 잘난 것은 잘난 대로, 못난 것은 못난 대로, 긴 것은 긴 대로, 짧은 것은 짧은 대로, 모난 것은 모난 대로, 둥근 것은 둥근 대로 무위(無爲)하고 자연(自然)스럽게 보존하여 인위를 가하거나 억지로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말의 뒤에는 천하 만물을 볼 때 크다, 작다, 모나다, 둥글다, 잘났다, 못났다, 길다, 짧다 등의 속단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진실로 올바른 것은 없다’는 말과 ‘화인지 복인지 그 끝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한 앞 구절과 뒤의 의미가 이렇게 해서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장 역시 기존에 되어져 왔던 해석은 앞과 뒤가 전혀 어울리지 않고, 문맥의 연결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성인은 자기가 떳떳하다 하여 남을 깎아내리지 않고, 자기가 깨끗하다 해서 남을 헐뜯지 않고, 자기가 곧다 해서 함부로 하지 않으며, 자기의 영지가 빛난다 해서 외부에 자랑하지 않는다’는 번역이 얼마나 원문과 동떨어져 있는지, 또한 자의(字意)와는 얼마나 어긋난 해석들인지, 동시에 이 장 내에서 조차 앞의 말들과 얼마나 따로 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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