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덕경 53 夷徑

무위당 2011. 4. 12. 09:38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惟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내가 (만약) 아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큰 도를 행한다는 것은 두려워하며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큰 도는 무리속에 더불어 사는 것인데 사람들은 저 혼자 지름길로 가려고 한다.

조정에 사람이 없고, 밭은 황폐하고, 창고는 비었는데,

화려한 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차고, 맛난 음식에 질리면서 재물과 보화에 여유가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도둑질한 것을 자랑함이니 도가 아니라 할 것이다.

 

介  끼일 개     惟  생각할 유 (唯 오직 유)     施  베풀 시     除  덜 제     蕪  거칠어질 무     

綵  비단 채     帶  띠 대     厭  싫을 염     夸  자랑할 과     哉  어조사 재

 

※ 이경숙 해설

‘개연(介然)’이라는 말은 다른 용례가 없어 문맥으로 보아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다. 노자는 지금까지 ‘지(知)’를 부정하고 거부하여 왔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하기가 입장 곤란할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아는 것(知)이 있다면...’하고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 한테는 ‘지(知)에 의지하지 마라’, ‘지(知)를 자랑하지 마라’고 늘 이야기 해놓고 정작 노자 당신은 왜 ‘아는 것이 있다’는 모순된 소리를 하느냐고 시비걸지 말라는 것이다. 더 쉽게 풀어 보면 ‘나는 아는 것이라고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라는 서두이다. 이는 이 말 뒤에 오는 ‘노자가 알고 있는 그 한 가지’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는 표현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사역동사 ‘사(使)’의 존재이다. 이 글자가 풍겨주는 뉘앙스는 ‘~을 하게 한다면, ~을 하도록 허락해 준다면’이다. 그래서 ‘만약에 내가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하고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知)’라고는 가진 것이 없는 노자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바로 다음 구절 ‘행어대도(行於大道) 유시시외(惟施是畏)’이다. 뜻을 풀어보면 ‘큰 도를 행한다는 것은 오로지 두려워할 줄 알고(是畏), 베풀어야 한다(惟施)는 것이다.’가 된다. 즉 도를 행한다는 것은 베푸는 것이라는 노자의 말씀이다. 만약에 “도덕경” 5천 글자 속에 이 한마디가 없었다면 노자의 사상이나 철학은 아주 이기적이고 고립적이며 자폐적인 은둔사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외기신(外其身)’을 가르쳤고, 바로 앞 장에서는 ‘색기태(塞其兌) 폐기문(閉其門)하라’고 권하는 지경이니, 이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노자가 가르치는 것은 ‘처세술(處世術)’이 아니라 ‘처외세술(處外世術)’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노자는 물과 같은 상선(上善)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하선(中下善)을 말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색기태(塞其兌) 폐기문(閉其門)’을 말한 다음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와야 노자라고 할 수 있다.

 

‘대도심이(大道甚夷) 이민호경(而民好徑)’에서 ‘이(夷)’와  ‘경(徑)’은 서로 반대되는 의미라야 한다 ‘경(徑)’은 지름길이므로, 지름길로 가는 것은 무리와 함께 있지 않고 혼자 튀는 것이다. 그래서 ‘이(夷)’는 ‘무리’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대도심이(大道甚夷)’라는 구절의 뜻은 ‘큰 도는 항상 무리와 함께한다’는 말이 되는데, 의역하면 ‘큰 도란 바로 공생(共生)이고 상생(相生)이다’는 말이다. 항상 세상의 모든 사람과 무리를 이루어 함께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즉 더불어 사는 사람이 바로 대도를 행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민호경(而民好徑)’한다. 지름길로 질러 가는 것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자기 혼자 가는 것이다. 남들보다 먼저 가고, 보다 빨리 가고, 자기 혼자만 가기 위해 지름길을 찾는다. 그 결과로 세상은 다음 구절과 같이 된다.

 

'제(除)’는 ‘섬돌’이나 ‘뜨락’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심제(甚除)’라는 그림에서 연상되는 광경은 ‘쓸쓸하게 텅 빈 뜨락’이다. 그러니까 조정에 사람이 없어 텅 비었다는 것이니, 왕이나 제후 장상, 관리들이 나랏일을 내팽개치고 자기 잇속 챙기는 데만 바쁜 탓에 조정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물론 조정이 텅 빈 뜰과 같이 사람이 없는 이유는 관리들이 전부 자기 잇속을 챙기기 바쁜 탓이니 ‘조정은 부패하고~’라고 해석하여도 큰 문제는 없지만,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은 논리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관리들이 개인적인 이권에 몰두하여 ‘조정이 텅 비어 나랏일과 민생을 돌보지 않으니’ 이에서 야기된 결과가 당연히 ‘전심무(田甚蕪)’이고, ‘창심허(倉甚虛)’이다.

 

조정은 텅 비어 밭은 황폐하고, 창고는 비었는데, 관리들은 잇속을 챙겨 ‘화려한 무늬의 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차고, 맛난 음식을 질리도록 먹고 재물과 보화가 넘치니’ 이것이 일부의 지도층, 권력자들의 한심한 작태들이다. 바로 앞 구절에서 말한 ‘지름길을 달려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다. 남이야 죽든 말든, 백성들의 삶이 비참하던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영락에만 관심을 갖는 무리가 바로 더불어 살지 않고 혼자서 지름길을 가는 자들이다. 바로 하늘을, 세상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짓이다. 그래서 노자는 ‘나에게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큰 도를 행하는 것은 바로 하늘을 두려워하여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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