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行無轍迹 善言無瑕跡 善數不用籌策
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 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잘 가는 것은 바퀴 자국이 남지 않으며, 잘 하는 말은 흠집이 남지 않으며,
잘 세는 것은 주책이 필요하지 않으며,
잘 닫는 것은 빗장과 열쇠가 없어도 열지 못하며,
잘 묶은 것은 밧줄이 없어도 풀지 못한다. (잘 묶으면 줄이 없이 묶어도 풀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항상 사람을 잘 구하므로 사람을 버리지 않으며,이것을 일컬어 명(明)을 안는 것이라 한다.
고로, 선인(善人)은 불선인(不善人)의 스승이 되고, 불선인(不善人)은 선인(善人)의 자원이 되니,
스승이 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가르칠 자원을 사랑하지 않으면,
비록 안다고 해도 크게 미혹할 것이니,
이를 일컬어 ‘구함에 있어서의 묘(妙)’ 라 한다.
轍 바퀴자국 철 迹 자취 적 瑕 티 하 跡 발자취 적 籌 투호살 주, 산가지 주
策 꾀 책 , 산가지 책 關 빗장 관 鍵 열쇠 건 約 맺을 약 襲 염습할 습
※ 이경숙 해설
어떤 일을 할 때에 수반되는 부작용과 오명이 없는 것이야말로 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수레가 지나가고 나면 바퀴 자국이 남아 있고, 말이 많은 뒤에는 반드시 흠이 되는 부분이 남고, 셈을 하고 나면 주책(셈하는 쓰는 도구)이 남으며, 닫은 곳에는 빗장이 걸려 있게 마련이고, 묶어놓은 것은 밧줄이 보이는 것이다. 세상사도 이와 같아 아무리 좋은 목적의 일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원망과 지탄을 받을 일이 생기게 된다. 노자는 이를 염려하여 일에 있어서 그런 것들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다. 공자도 천하에 인의를 세우고자 하면서 세도가들의 권력 다툼에 끼여 구설수가 있었으며 그 제자들을 고생시켰고, 춘추오패라 불리던 뛰어난 제후들도 천하의 안정에 몰두했지만 역시 참혹한 일들을 저질렀고, 의인과 지사들이 대의를 위해 헌신 했지만 그 가족과 친지들에게는 몹쓸 짓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다 수레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요, 말 뒤에 남은 흠이요, 닫은 뒤의 빗장이요, 묶은 것에 남은 밧줄인 것이다. 노자는 왜 이런 일들이 생긴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를 노자는 사람과 물건을 버리는 데 있다고 본 듯하다. 노자 당대까지의 중국 역사를 보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점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을 할 때는 사람과 물건을 구하게 되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버리게 되고, 또한 구하는 과정에서도 쓸모없는 것은 버리고, 쓸모있는 것은 취하게 된다. 이 버리는 것에서 일의 흠집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 기(棄)의 과정에서 대부분이 모질고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후세에 비난과 지탄을 받는 부분들이 남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선인(善人)’은 ‘착한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사람을 의미하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유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칠 수 있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적합한 사람이 가르쳐 쓸 수 있는 자원이 된다는 말이다. 앞에서 노자가 말하기를 사람을 버리지 말라고 하였는데, 사람을 버리는 이유는 악하거나 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쓸모가 없어서이다. 그래서 당장에 필요하지 않고 쓸모없는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가르치면 되고, 또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의 자원이니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을 구하여 쓰는 요령이라는 것이다.
노자는 한 대목 내에서 한 글자를 또 다른 뜻으로 쓰지않는다. 앞에서 나열된 ‘선행(善行) 선언(善言), 선수(善數), 선폐(善閉), 선결(善結)’등에 쓰인 ‘선(善)’은 ‘착하다’는 뜻이 없다. ‘유능하다, 유용하다, 일을 잘 처리 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