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도경 23 希言

무위당 2011. 2. 18. 09:03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 有不信焉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그러함이다.

회오리 바람은 아침내 불 수 없고, 소낙비는 하루 종일 내릴 수 없다.

이리하는 것이 천지다.

천지도 이런 것이 오래 가지 않는 것을 높이 사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도자(道者)를 쫓는 일은 도자(道者)가 도(道)와 같고, 덕자(德者)가 덕(德)과 같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잃은 자(失者)는 잃음(失)과 같을 것이다.

(만약에) 도자(道者)가 도(道)와 같다면, 도(道) 역시 그를 얻음을 기뻐하고,

덕자(德者)가 덕(德)과 같다면, 덕(德) 역시 그를 얻어 기뻐할 것인데,

(그렇다면) 잃은 사람이 잃음과 같다면 잃음이 역시 그를 얻어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 수는 없다).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생긴다.

 

飄  회오리바람 표     驟  달릴 취     況  하물며 황

 

※ 이경숙 해설

말(言)은 ‘스스로 그러한 것’을 타자에 대해 인정받고 주지시키기 위한 것인데, ‘스스로 그러한 본성’은 남이 어떻게 보거나 말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성립된다는 점에서 말로 떠들거나 전달할 필요가 없다.

검은 것은 검다 우기지 않아도 검은 것이요, 희다고 우겨도 검은 것이며, 둥근 것은 말로 주장하지 않아도 둥근 것이며, 곧은 것은 증명하지 않아도 곧은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정직한 사람은 말로 떠들어 인정받지 않아도 정직한 것이고, 덕이 있는 사람은 말로써 떠들어 자랑하지 않아도 덕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말로 떠들어 자랑하거나 말로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일수록 그 본성은 말과 다른 것이다.

시끄럽게 떠들거나 눈에 두드러지는 행위나 말은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은 그리 오래 속지 않을 것이며, 진실로 오래 가는 것은 스스로 그러한 본성이며, 그것은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도자(道者)는 ‘깨쳤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며, 요즘 말로 ‘도사(道士)’들이다.

‘도자동어도(道者同於道)’는 ‘도자(道者)를 도(道)와 같다고 착각한다’는 말이다. 중을 불법(佛法)이라 착각하여 존경하고, 목사를 하나님인 것처럼 추종하는 것이다.

‘잃은 자(失者)’는 ‘잃음 그 자체(失)’와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道者)는 도(道)와 같지 않고(동일시 될 수 없고), 덕자(德者)는 덕(德)과 같지 않다.

도자(道者)라고 하여도 ‘도(道)’ 그자체는 아닌 것이다.

덕자(德者)라고 하여도 ‘덕(德)’ 그자체는 아닌 것이다.

만약 ‘도자(道者)가 바로 도(道)’라면 노자의 사상은 도사(道士)들을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을 염려하여 노자는 그러지 말라고 못박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를 얻었다고 자랑하거나 신통력을 내세워 도자(道者)로 인정받으려 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아침을 못넘기는 회오리바람과 하루를 못가는 소낙비라 하는 것이다.

 

‘잃은 사람(失者)’이 ‘잃음(失)’과 같다면 잃음이 역시 그를 얻어 기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도(道) 역시 ‘도자(道者) 얻음을 기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덕(德) 역시 ‘덕자(德者) 얻음을 기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도자(道者)라 하여도 ‘도(道)’ 그 자체는 아닌 것이며, 덕자(德者)라 하여도 ‘덕(德)’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동어도자(同於道者)’는 ‘도자동어도(道者同於道)’를 줄여 표기한 것이다.

‘동어덕자(同於德者)’는 ‘덕자동어덕(德者同於德)’를 줄여 표기한 것이다.

‘동어실자(同於失者)’는 ‘실자동어실(失者同於失)’를 줄여 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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