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德之容 唯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숨은 덕의 모습은 오직 도를 좇아 나오는 것이니
도가 만들어 내는 물(物)이여! 황(恍)하고 홀(惚)하구나 .
홀(惚)하고 황(恍)한 가운데 상(象)이 있고,
황(恍)하고 홀(惚)한 가운데 물(物)이 있으며,
요(窈)하고 명(冥)한 속에 정(精)이 있다.
그것(德)의 정(精)은 심히 참된 것이며, 그 속에 믿음이 있어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것(德)의 이름을 떠나서는 만물을 가릴 수 없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 영원하며, 만물의 근원(衆甫)을 통솔한다.)
우리가 삼라만상의 이치를 어떻게 아는가? 바로 이것이다.
孔 구멍 공 窈 그윽할 요 冥 어두울 명 閱 검열할 열 甫 클 보
※ 이경숙 해설
이 장은 ‘도덕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도(道)’와 ‘덕(德)’의 차이점을 밝혀놓았기 때문이며, 여기서부터는 도덕경의 본론이다.
노자가 말하는 ‘도’와 ‘덕’의 정의
‘도’ : 인식할 수 없는 세계의 근본
‘덕’ : 인식 가능한 세계의 법칙
이 장에서 지금 이후로 묘사되는 것은 ‘도덕경’의 ‘창세기’이며, ‘도’로부터 천지만물이 나타나는 현상계의 전개(展開)라는 장엄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장엄한 광경을 단지 서른여섯 글자로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웅크리고 숨어 있는 ‘도(道)’, 그것이 밖으로 실체를 드러내려는 순간이 ‘공덕(孔德)’이요, 그 형용이 바로 ‘홀황’과 ‘황홀’과 ‘요명’이다. ‘도’를 쫓아 일어나 모습을 드러내는 그 속을 보니 ‘상(象)’이 있고, ‘물(物)’있고, ‘정(精)’이 있더라는 것이다.
‘상’과 ‘물’은 인간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감각적 인식의 대상이다. 그리고 ‘정’은 생명의 시발이 되는 원초적인 기운이다. ‘상’, ‘물’, ‘정’ 이 세 가지는 드러난 세계의 상징이며, ‘도’의 뒤에 숨어 있다. 이것들을 끌고 나타난 것이 바로 ‘덕’인 것이다.
‘중보(衆甫)’ 또한 노자가 만들어낸 용어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어중이떠중이’ 또는 ‘온갖 잡동사니’로써 ‘도’에서 연유하여 드러난 세상의 모든 사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