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일기

용서한다는 것은

무위당 2010. 1. 4. 17:34

성난 유대인들이 간음한 여자를 그들의 율법에 따라 돌로 쳐죽이는 형벌을 가하고자 예수께 끌고 왔다. 예수는 땅에 무언가를 쓰면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군중의 흥분이 가라앉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너희중에 누구든 죄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쳐라"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군중들은 하나둘 쥐었던 돌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홀로 남은 여인에게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 짓지 말라."               - 요한복음 -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이다. 인간사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용서임을 예수는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예수는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고도 했다.

 

 

자공이 공자께 물었다

" 평생 행해야 할 한 말씀이 있습니까?

  (有一言而可以終身之行者乎)

공자왈

" 그것은 용서하는 것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바는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 위령공편 33장 -

 

공자가 공부한 것을 기억해서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나로 관통한 도(一以貫之道)로써 가르친 것이라고 했던 道가 바로 용서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아예 怨을 짓지 말라고 했다.

怨을 짓지 않으면 恕할 일도 없을테니 이것이 無爲之道 아니겠는가.

" 큰 원한을 풀었다 하여도 반드시 약간의 원한은 남는 법이다. (和大怨 必有餘怨)  

  그런데도 잘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고 안심해도 좋겠는가? (安可以爲善) "    - 도덕경 79장 -

 

용서란 자기를 비우는 것이다.

자기를 비우지 않고 타인을 용서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 있는데 겉으로만 용서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학습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간다. 이러한 기억들이 지층의 퇴적물처럼 우리 뇌에 각인되어 있고,  학습된 그 정보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게 한다. 이러한 행동 패턴은 외적 위험으로부터 자기자신을 보호하게 하는 생물학적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모든 생명은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생명 진화의 역사는 이기주의를 동력으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는 눈으로 관찰되는 현상일 뿐 진리는 아니다. 개체를 보면 서로 먹고 먹히는 양육강식의 세계이지만 전체를 보면 생명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위대한 시스템, 가이아 인것이다.

 

인간은 빵만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우리 삶의 목적은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자기 영혼의 완성에 있다. 사회적 성공은 자기 영혼의 완성을 돕는 방편일 뿐이다.  영혼의 완성은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고, 비우고, 용서해야 한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켜켜히 쌓여 온 경험과 감정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 기억들을 업이나 죄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과 감정의 기억들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정화해 가다 보면 마침내 참 나를 만나게 된다.

 

참 나는 천지기운이다. 우주 에너지다. 우주 에너지는 물질이 되고 물질은 에너지로 전환된다. 아인쉬타인이 증명한 과학적 진리이다 (E=mc²). 지금까지 발견된 관측 결과에 의하면, 우주는 암흑 에너지(중력에 반하여 팽창하는 우주의 척력) 73%, 암흑 물질(은하의 중심별과 외곽별들의 공전속도가 유사한데도 외곽별들이 이탈되지 않도록 작용하는 힘) 23%, 성간 물질 3.6%, 별,은하 물질 0.6%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광대한 우주의 실체로 인식했던 별,은하 물질은 우주 구성의 0.6%에 지나지 않는다. 70% 이상이 에너지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에너지가 응축하면 물질로 변한다. 생명은 우주 기운이 응축된 에너지의 변환체다. 죽음은 응축된 에너지가 흩어져 다시 우주로 되돌아 감이다. 生과 死는 이 우주 에너지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현상인 것이다. 삶과 죽음이 반대의 현상이 아니라 동일한 현상이다. 한 근원에서 나온 한 생이 끝나고 죽으면 온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순환 고리인 것이다. 死則生 生則死. 죽는 것은 사는 것이요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읊을 수 있는 오도송이다.

 

이 우주 에너지는 또한 진동체다. 우주의 고유 진동수는 7Hz 라고 한다 (지구 고유진동수 7.83Hz). 깊은 명상을 통해 뇌파가 가라 앉으면 우주 고유진동수 7Hz에서 공명을 일으키게 된다. 영혼의 선각자들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된다. 그 분들이 우주와 공명을 통해 깨달은 공통적인 메시지는 <사랑>이다. 우주를 움직이는 동력은 <사랑>이다. 땅과 하늘과 생명은 사랑으로 매듭지어진 하나의 광대한 유기체다.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참 나를 깨달을 때 우주 만상이 하나임을 안다. 나와 토끼, 나와 꽃, 나와 새, 나와 너가 남남이 아니고 하나임을 안다. 그래서 원수를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비우고 또 비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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