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덕경 68 不與

무위당 2011. 5. 11. 09:02

善爲士者不武 善戰士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

是謂 不爭之德

是謂 用人之力

是謂 配天 古之極

 

잘 연마한 장부는 무(武)를 행사하지 않으며, 싸움에 능한 사람은 화내지 않으며,

늘 이기는 사람은 맞붙지 않으며, 사람을 잘 부리는 자는 남의 아래에 들어간다.

이것을 일러 부쟁(不爭)의 덕이라고 하며,

이것을 사람을 부리는 힘이라 하며,

이것이야 말로 하늘과 짝을 짓는 일이며, 옛 선인들의 지극한 경지였다.

 

※ 이경숙 해설

‘사(士)’라는 글자는 뜻이 많고 용례도 갖가지여서 쓰인 장소에 따라 의미가 사뭇 다르다. 공자가 말하는 ‘사’는 ‘학문을 연마한 사람’이다. 즉 선비다. 다른 말로 하면 ‘식자(識者)’들이다.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사’는 ‘도를 닦는 사람’, ‘수행자’라는 의미도 있고, 지금 같은 경우에서처럼 ‘무부(武夫)’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기도 한다. 문약한 선비나 학자보다는 무용을 자랑하는 장부나 용사와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선위사자불무(善爲士者不武)’는 ‘진실로 무술을 잘 연마한 장부는 무용을 뽐내지 않으며’하고 읽을 수 있다. ‘불무(不武)’라는 말 역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무용을 자랑하지 않는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등 다양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여(不與)’라는 말은 ‘직접 부딪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현대적인 군사 용어로 말하면 ‘간접 접근’이고 ‘우회 기동’이다. 손자나 크라우제비츠, 마한 등의 군사학자들이 한결같이 승리의 비결로 내세워 설명하는 것이 바로 목표에 대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접근이다. 군대를 적의 강한 곳은 피하여 우회시킨다는 용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목적의 달성을 추구하는 방법으로써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충돌이 아니라 외교, 심리, 선전, 협박, 교란, 정치 경제적인 고립, 봉쇄 등의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휠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여(不與)’로 싸우는 요결이다. 나폴레옹은 이런 간접적인 접근 보다도 항상 야전에서 군대와 군대가 만나 자웅을 결정짓는 결전주의를 신봉하고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그 끝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맞은 쓸쓸한 죽음이었다. 반면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은 간접 접근주의자였다. 군대끼리의 충돌은 피치 못할 경우에만 시도했고, 외교와 시위, 정치 경제적인 압박 등을 사용하여 대부분의 목적을 이루었다. “손자병법”을 남긴 손자 역시 간접 접근론자였다. 직접적인 무력간의 충돌은 가급적 피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월왕(越王) 구천(勾踐)도 오(吳)나라를 치기 전에 서시(西施)를 오왕에게 바쳐 향락에 빠지게 하고, 오왕은 서시에게 빠져 고소대(姑蘇臺)를 지어 오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고, 식량을 빌려와 오나라를 곤궁하게 하고, 오왕을 교만하게 만들어 이웃나라와 자주 싸우게 하는 등의 갖가지 방법으로 상대를 약화시킨 후 결정적인 시기에 군대를 동원하여 오나라를 멸하였다. 그러지 않고 처음부터 오로지 군대의 힘으로만 싸워 이기려고 했다면, 대국 오나라에 이길 수도 없었겠지만 이겼다 하더라도 월나라 역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상재와 불여(不與)하면서 목적을 달성하고 이기는 것이야 말로 병가의 선망이요, 병법의 지향점이다. 노자의 이 말은 병볍의 요체에 관한 정곡을 찌르고 있다. ‘싸움에 능한 자는 화내지 않으며, 언제나 이기는 자는 맞붙지 않는다.’ 군사만이 아니라 정치나 외교, 사업에도 역시 가치로운 이야기다.

 

“전국책(戰國策)”‘초회왕(楚懷王)’편에 불여(不與)로 싸움에 이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여자(與者) 선승적자(善勝敵者)’의 이야기가 있다. 위(魏)나라 왕이 초(楚)나라 왕에게 선물한 미녀가 있었는데, 이 때 초왕에게는 정수(鄭袖)라고 하는 총희(寵姬)가 있었다. 왕이 위나라에서 보내온 미녀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정수는 옷이나 패물, 노리개 등을 아낌없이 선물하면서 그 미녀를 왕보다도 더 귀여워하였다. 그것을 보고 초왕이 생각하기를 ‘여자가 남편을 섬기는 수단은 아름다움이므로 질투는 피치 못할 자연의 감정이다. 그런데 지금 정수는 내가 새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자 나보다도 더 귀여워하고 있으니, 이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효자의 마음이요, 임금을 섬기는 충신의 생각이다’ 하며 정수를 기특하게 여기게 되었다. 정수는 왕과 새 여자에게 자기의 질투가 없음을 믿게 한 후에, 어느날 새 여자에게 이렇게 일렀다. “왕은 자네의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하고 계시네, 하지만 자네의 그 코만은 싫어하시는 것 같으이, 그러니 왕을 뵐 때 코만 살짝 가리도록 하게” 이 말을 들은 미녀는 왕을 볼 때마다 손으로 코를 살짝 가렸다. 왕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정수에게 까닭을 물었다. 정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전하의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하더이다.” 노한 왕이 화를 내며, “요망한 것 같으니라고! 당장 그 년의 코를 베어버려라!”하고 소리쳐 명령했다. 만약에 정수가 위나라에서 온 여자에 대한 질투를 드러내어 그녀를 멀리하고 미워했다면 왕은 더욱 더 그녀에게 마음이 쏠렸을 것이고, 정수 자신은 질투의 화신으로 원망을 받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정수는 새 여자와 결코 충돌하지 않았고, 새 여자를 총애하는 왕과도 부딪히지 않았다.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불여(不與)’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훌륭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이것이 곧 노자가 말하는 ‘선승적자(善勝敵者)’이다. 잘 이기는 사람인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노자의 결론은 항상 마지막 말에 있다. ‘선용인자(善用人者) 위지하(爲之下)라’, 즉 ‘사람을 잘 쓰는 자는 그 사람의 아래에 들어 간다’는 말이다. 우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유현덕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잘 알고 있다. 제갈공명을 초빙하여 쓰기 위하여 공명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일화는 그 아래에 섬으로써 상대를 자기의 사람으로 만든 좋은 예이다. 먼저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여 사람을 얻고 쓰게된 일화는 노자 당시의 춘추시대에만도 셀 수 없이 많다. 사람을 얻는 데는 이익으로 유혹하는 것과 겸양으로 상대를 높여 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전국시대 삼대 자객 중 한 명인 진(晉)나라 사람 예양(預讓)이 남긴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士爲知己者死),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단장한다(女爲悅己者死)’는 말이 있듯이 진실로 사람을 얻는 방법은 그 사람의 아래에 서는 것이라 하겠다.

 

‘부쟁(不爭)’은 노자사상의 주요 핵심적 내용이다. 도(道)에 합치되는 천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한 것이라 다툼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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