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同散異

3 D 프린터

무위당 2010. 3. 5. 10:34

'공장'서 물건 찍는 대신 '집'에서 만드는 시대 온다       2010.3.5

세계미래학회 전망으로 본 지구촌 모습

“미래는 불확실하며, 그 불확실성은 인간 창의성의 핵심을 이룬다.” 197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확실성의 종말’이라는 책을 쓴 러시아 과학자 일랴 프리고진(Prigogine)의 말이다. 21세기의 첫 1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가올 20년 후 세상을 엿보는 ‘2030 미래를 가다’를 연재한다. 앨빈 토플러(Toffler)와 존 나이스빗(Naisbitt) 등 저명한 미래학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세계미래학회(WFS)가 발표한 ‘올해의 미래 전망’을 근거로 지구촌의 미래 모습을 추적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물건 파일' 다운받아 입체제작 가능한'3D 프린터'에 연결
재료인 플라스틱 녹으면서 수백개 층 이뤄 모양 형성, 순식간에 실물 만들어…
"공장제작·유통단계 사라져 제2 산업혁명 가져올 것"


이런 상상을 해보자. 집에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 커피 잔이 부족하다. 누군가 인터넷에 올려놓은 예쁜 커피 잔 파일을 골라서 다운받는다. 밥그릇이면 밥그릇, 숟가락이면 숟가락 등 다른 필요한 주방 기구도 인터넷에서 골라 공짜로 다운받는다. 이어 컴퓨터에 3D 프린터를 연결하고 순식간에 실물을 찍어 낸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영국의 바스(Bath)대학교 기계공학과 렙랩(RepRap)연구소에서 개발한 '렙랩 3D 프린터'의 기술은 누군가가 물건의 3D 모형 파일을 디자인해서 웹에 올리면 누구든지 가져다가 프린터로 만들 수 있게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영국 바스대 기계공학과 렙랩연구소의 아드리안 보이어 교수가 자신이 개발한 3D 프린터로 찍어낸 잔과 톱니바퀴, 옷걸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보이어 교수의 왼쪽에 놓인 기계가 렙랩에서 만든 두 번째 3D 프린터‘멘델’이다.

렙랩(RepRap)이란 Replicating Rapid-prototyper의 약자로 '신속한 조형(造型) 복제' 기술을 가리킨다. 렙랩 프로젝트를 2004년 2월에 처음 제안했고 16명의 다국적 연구팀을 현재까지 이끌고 있는 아드리안 보이어(Adrian Bowyer·57)교수를 지난달 22일 오후 영국 남서부 바스시에 있는 바스 대학으로 찾아가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기계공학과 실습실 한 귀퉁이에 있는 5평 남짓한 렙랩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처음엔 작아서 기자재 창고로 착각했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기존의 3D 프린터에 비해 이 기계가 크게 다른 점은 두 가집니다. 정말 저렴한 것, 그리고 기계가 스스로 복제를 한다는 것." 명쾌했다.

사실 3D 프린터 자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이미 미국이나 이스라엘 회사들이 만든 고가 입체 프린터들이 시장에 나와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최근 히트한 3D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운동장 크기의 덤프트럭이나 거대한 광산 채굴 장비 등 소품도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대당 2500만~9000만원에 팔리는 제품이라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엔 부담이 크다.

반면, 이 프린터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모든 부품과 프로그램 설계 도면이 렙랩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기 때문에 핵심 부품과 칩이 내장된 기판, 모터 등의 기초 재료만 구입하면 보통 350유로(약 55만원)면 3D프린터를 집에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는 이 프린터의 핵심 기술은 따로 있다. 바로 부품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기계라는 것. 실제로 3개월 전에 완성된 렙랩 2호 '멘델'의 플라스틱 소재 부품들은 2008년 5월에 처음 만들어진 렙랩 1호 프린터 '다윈'이 만들었다. (그는 기계가 진화하고 스스로 복제할 것이라는 의미로 진화생물학의 아버지 다윈과 유전학을 만든 멘델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물론, 값비싼 기존 3D 프린터는 스스로 부품을 만들도록 고안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 프린터가 단순히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만든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렙랩 프린터는 첫 아이디어에서부터 연구와 개발 그리고 현재 사용자들까지 모든 자료가 무료로 공개되기 때문에 그 발전 속도를 예측하기 어렵다. 보이어 교수는 "처음 정부 지원 연구비 2만파운드(약 3500만원)로 시작해 나와 박사과정 조교 그리고 학부생 제자까지 3명이 연구팀의 전부였다"며, "나머지 14명은 내가 올린 제안서를 인터넷에서 보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의 팀원들은 이제껏 한 번도 모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 렙랩 프린터의 연구와 개발은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완성된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이었다.

모든 소스를 오픈한 현재 렙랩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전 세계 2500여 명의 사용자는 자신들이 디자인하고 만든 파일과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그중엔 간단한 옷걸이, 찻주전자, 노트북 스탠드 같은 실용적인 물건도 있고 로봇이나 톱니바퀴 부품 같은 정교한 복제품, 그리고 프린터에 적용하면 바로 만들 수 있게 설계도만 올려진 형태도 있다.

렙랩연구소에 걸린, 3D 프린터로 만든 벽시계. 시계 안에 검은색 시침, 분침이 보인다.(사진 왼쪽) / 렙랩연구소 3D 프린터‘멘델’로 찍어낸 샌들, 톱니바퀴, 기계 부품, 옷걸이, 문고리(사진 오른쪽·오른쪽 앞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구소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리스 존스(23·바스대 기계과 박사과정)씨는 "이 기계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제품을 설계하며 아무리 실수를 반복해도 얼마든지 다시 찍어서 해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자랑했다.

3D 프린터 기술의 원리를 묻자 보이어 교수는 "레고 블록이 입체로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간단하다"라며 실제 제작 과정과 제품을 보여 주었다. 프린터는 하얀 플라스틱 심을 녹이자 수백 번의 층(레이어)을 이루며 모양이 형성됐다. 컴퓨터 모니터의 3차원 도면에서 설계된 옷걸이가 나오는데 20분 정도가 걸렸다.

프린터에서 찍어내는 수많은 플라스틱들이 쌓인다면 대단한 쓰레기 공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건 땅에 묻으면 6개월 내에 썩는 소재"라고 했다. 실제로 렙랩 프린터의 모든 제품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폴리랙틱 애시드(Polylactic acid)'라는 소재를 원료로 하고 있다. 폴리랙틱 애시드는 옥수수나 감자, 사탕수수 등에서 추출한 원료를 발효시켜 끓인 후 화학 처리를 거쳐 고체로 굳혀서 쓸 수 있는 친환경 소재다. 보이어 교수는 이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한 뉴질랜드 팀원의 제안으로 채택된 것이라고 했다.

프린터 '멘델'이 만들어낼 다음 버전의 기술을 묻자 그는 "아마도 좀 더 정교한 제품을 만드는 소형화된 모델"일 것이라며 솔직히 어떻게 진화할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 렙랩 프린터의 생산품들은 상업용 입체 프린터의 그것들에 비해 덜 정교하고 투박하다. 하지만 연구팀은 현재 주석, 납 등을 합성한 금속과 세라믹의 소재를 활용해 찍어내는 단계까지 연구하고 있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지(紙)는 전문가 기고문을 통해 렙랩 3D 프린터는 훗날 제2의 산업 혁명을 가져오거나 전 세계 자본주의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보이어 교수는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거나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해 수많은 유통단계를 거치게 한 뒤에야 상점에 가 물건을 살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이 기계가 바꿀 것이다. 즉 집에서 인터넷으로 필요한 모든 물건 목록을 고른 뒤 다른 사람이 올린 설계도 파일을 공짜로 다운받아 실물을 만드는 기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왜 처음부터 특허를 신청해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처음부터 남들 못쓰게 막으려 했다면 남은 인생을 전부 누가 내 기술 가져다 쓰는지 찾으러 다니는 데 허비했을 것"이라며 "매일 밥 먹을 만큼 살고 있고, 재미있게 일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며 웃었다.

 

 

☞3D 프린터
3D 프린터의 기본 개념은 모든 3차원(입체) 물체를 한 방향으로 얇게 자른 뒤 재조합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선 캐드(CAD) 같은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원하는 물건을 한 방향으로 얇고 평평하게 나눈다. 그 디자인을 3D 프린터와 연결된 컴퓨터에 입력하고, 각 디자인 모양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프린트한 뒤 합쳐 굳히면 실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