仙道

죽음에서 깨어있기

무위당 2012. 2. 17. 11:5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열매 맺게 한다면,

너희가 한 것이 너희를 구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 안에서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하지 않은 것이 너희를 죽일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구하는 자는 구할 때까지 중단하지 말라.

 

그가 발견하면 그는 고통받을 것이다.

그는 놀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체를 다스릴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의 속뜻을 풀어낼 수 있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 만일 그대의 내면이 가난하다면 외면은 부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 자신의 소유물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다. 그대의 내면이 부자라면 그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가 어떤 것을 가졌든 안 가졌든 죽음은 그대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갈 수가 없다. 오직 의식만이 죽음을 초월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죽음을 초월하는 유일한 빛줄기이다.

그대는 완전히 깨어 있는 채로 죽을 수 있는가?   

그것만이 유일한 핵심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깨어 있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어떻게 완전히 깨어 있는 채로 죽을 수 있겠는가? 삶을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죽음에서 깨어 있을 수 있겠는가?

 

이것을 기억하라. 너무 심한 고통이 있을 때 육체는 그대를 무의식으로 밀어 넣는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마취제를 최근에야 만들어냈지만 자연은 언제나 마취를 알고 있었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어느 순간 그대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기절하게 된다. 고통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는 내면에 자동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대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가 없다. 고통은 참을 수가 없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못참을 정도라면 의식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참아내지 못할 만한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고통은 참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고통이 참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대는 의식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가장 큰 고통이다. 죽음이 다가오면, 그것은 가장 큰 수술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토록 동일시 해오던 육체로부터 그대의 전 존재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손가락을 잘라 내거나, 팔을 잘라 내거나, 혹은 맹장을 잘라 내는 수술과는 다르다. 그것은 그대로부터 그대의 몸 전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어떤 의사도 아직 그런 수술은 할 수가 없다. 육체 전체가 제거되고 분리되는 것이다. 그대는 이 육체와 더불어 칠팔십년을 살아왔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육체라고 생각했다. 그 고통은 그토록 크기 때문에 그대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만다.

 

삶 전체는 죽음에서 깨어있기 위한 준비이다. 산야신이 해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구도자가 해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준비하라!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말라. 그것은 일단 한 번 잃게 되면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대의 존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풍요는 더욱 깨어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깨어 있는 의식으로 하라. 그대의 삶은 다를 수 있지만 그대의 내적인 추구는 다를 수 없다. 그것은 같다.

 

그대는 상인일 수도 있고, 교수, 의사, 기술자, 혹은 노동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이는 없다. 내적인 것에 대한 추구는 동일하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의식적으로 되는 길이다. 죽음조차도 그대를 무의식으로 만들지 못할 그런 의식의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가 말하는 의미이다. 그대 안에 있는 것을 펼쳐라. 그렇게 하면 그대는 구원받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대는 물에 빠질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예수는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을 한 자에게는 더욱 많이 주어질 것이요. 그것을 하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불합리하게 들린다. 예수는 말한다. “그것을 한 자에게는 더욱 많이 주어질 것이요. 그것을 하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는 깨어 있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깨어 있음은 더 많은 깨어 있음을 끌어 당기기 때문이다. 그대가 깨어 있게 되면 그대는 더 많이 깨어 있을 수 있게 된다. 모든 걸음은 더 앞의 걸음으로 그대를 이끌어 간다. 그대가 깨어있지 못하면 그대는 더욱 뒤로 멀어져간다.

 

 

* 욕망이 사라질 때, - 모든 욕망은 그대가 본래의 자기에 도달해야만 없어진다. 왜냐하면 욕망이란 근본적으로 본래의 자기, 내면의 의식,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의식에 도달하기 위한 갈망이었기 때문이다 - 그대가 가장 깊은 내면에 도달할 때, 욕망은 사라지며, 그 때 그대는 더 이상 거지가 아니다. 그대는 황제가 된다. 그대는 왕이 된다. “.....그리고 그는 전체를 다스릴 것이다.” 이제 이 모든 존재계가 그의 왕국이다. 

 

 

* 존재의 최종적인 신비를 맛본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더 이상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오직 마음 때문에 존재한다. 죽음은 오직 에고 때문에 존재한다. 죽음은 오직 그대가 육체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대가 만일 그대 안에 그 미치광이 에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대의 존재 안에 중심을 가지고 있다면, 죽음은 사라진다. 죽음은 그대가 거짓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대가 진리가 된다면 죽음은 사라진다. 진리에는 죽음이 없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악순환의 고리가 있다. 그대가 거짓되기 때문에 죽음이 생기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그대는 더욱 두려워하게 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대 주위에 더욱 많은 거짓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해서 악순환에 걸려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그 곳에서 뛰어 나와야만 한다.

 

에고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해결될 수 없다. 에고는 가장 거짓된 것이며, 가장 허황된 것이다.- 에고는 실체가 아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어쨌던 유지시켜아만 한다. 그것은 끝없이 유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실재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대가 만일 24시간 동안만 그것과 떨어져 있게 되다면 그것은 죽을 것이다. 24시간은 너무 길다. 24분간만 떨어져 있더라도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 아마 24초면 충분할 것이다. 그대가 그것을 기른 것이다. 그대는 그것을 조종하고 후원해 주었다. 그대는 그대의 에고를 위해 평생을 일했다. 그래서 그대는 자신이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꿈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이 오면 에고는 사라져야만 한다. 그때 그대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대는 의식을 잃게 되고, 무의식 상태 속에서 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이 모든 악순환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거짓된 존재가 되지 말라! 거짓과 가면을 버리고 진실된 존재가 되어라. 그대가 무엇이 되더라도 위선을 행하지 말라. 위선은 그대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대를 익사시키는 무거운 짐이다. 진리가 그대를 구원한다. 예수는 말했다. “진리가 너희를 해방시키고 구원할 것이다. 진리는 영원한 생명이다.”

                                                                                                                    

                                                                                                                                                      - 오쇼 도마복음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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